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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폴리스의 성립과 발전

by kraneco 2024. 10. 31.

 

고대 그리스의 유적

폴리스의 성립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폴리스의 성립과 더불어 시작했다. 그리스 철학의 종합자 또는 완성자라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인 정치학에서 인간을 폴리스적 동물이라 규정한 바 있을 만큼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폴리스가 그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존재였다. 그들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 폴리스 성원으로서의 생활이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곧 폴리스의 성원으로서의 생활이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곧 폴리스의 역사이며, 그리스의 문화는 곧 폴리스의 문화라 할 수 있다. 그리스의 역사가 폴리스의 성립과 더불어 시작한다는 것도 이러한 견지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폴리스의 성립이 갖는 더 큰 역사적 의의는 그것이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전체 서양문화의 참다운 시작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양사람들은 대체로 참다운 서양역사와 참다운 서양문화는 그리스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빛이 오리엔트로부터 왔다는 사실, 특히 서양문화의 중요한 기반의 하나인 그리스도교적 전통이 오리엔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그들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들은 서양문화의 더 근원적인 전통은 역시 그리스에 그 기원을 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들을 오리엔트인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생각 자체가 바로 고대 그리스인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한 인식의 바탕에는 전제군주제하에 얽매여 있던 오리엔트인들과는 달리 그들이 자유스러운 시민으로 구성된 공동체국가, 즉 폴리스를 형성하고 유지했다는 의식이 있었다. 그러한 폴리스를 만들어 냄으로써 고대 그리스인들은 서양세계가 장차 가지게 되는 국가형태의 원형을 마련했다고 서양인들은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폴리스의 성립이라는 사실이야말로 서양사와 오리엔트 역사, 더 나아가서는 서양역사와 동양역사가 갈라서는 분기점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폴리스의 성립 배경

 그러나 막상 그러한 폴리스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확하게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다만 기원전 800년경에 이르면 에게해 주변 각지에 많은 소국가들이 분립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들 소국가들은 대개 산이나 바다와 같은 자연 방벽에 의해 서로 분리되어 있었으며, 그 주민들은 흔히 언덕 위에 구축된 성채를 중심으로 모여 살고 있었다. 이들은 미케네 시대의 왕국들보다는 도리아인들의 침입 때 분열된 지방공동체였다. 이러한 소국가들이 곧 폴리스였다.

 폴리스가 가장 먼저 성립된 곳은 아마도 도리아인들에게 밀려난 원주 그리스인들이 이주해 간 소아시아 서부해안, 즉 이오니아와 에올리아 등지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 그리스 이주민들은 소아시아 원주민들의 공격을 막아내기 쉬운 반도나 그 밖의 적당한 곳에 그들의 새로운 거주지를 마련했다. 이민족에게 둘러싸인 새로운 거주지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한데 뭉쳐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조그마한 새 거주지에 알맞은 기존의 정치제도나 관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만들어 내야만 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곧 폴리스였다.

 그리스 본토에서도 사정은 대체로 이와 비슷했다. 다행히 도리아인들의 침략을 모면한 원주 그리스인들 또한 일단 유사시에 적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인접 마을에 살고 있는 몇몇 부족들이 뭉쳐 살아야만 했다. 영웅 테세우스가 여러 마을을 한데 뭉쳐 아테네를 세웠다는 대표적 예라 하겠다. 정복민으로서 내려온 도리아인들도 원주민들에 대한 그들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군사공동체로서의 결속을 강화하는 통합된 정치체제를 마련해야만 했다. 라코니아에 자리 잡은 스파르타가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폴리스 정치체제

 이렇듯 폴리스는 대체로 그 성원들이 스스로를 지키려는 군사적 목적에서 결속한 하나의 전사공동체로서 시작되었다. 원래 폴리스의 성원은 그것을 구성한 부족의 구성원으로서 처음에는 추첨으로 배정된 클레로스 소유농민에서 유래한 독립적인 토지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의 생활기반이었던 그리스의 농업은 포도, 올리브 재배를 위주로 한 집약농업이었다. 그들은 대규모 관개농업에 으레 따르기 마련인 각종 부역이나 공납의 의무를 부담하지 않았으며, 강력한 전제군주의 통제와 지배하에 예속되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고,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 할 수 있는 독립된 자유민이었다. 그 중에서 특히 유력한 자들이 바로 귀족들이었는데, 이들은 청동제의 투구와 갑옷, 방패와 철제 창검, 거기에다 군마까지도 자비로 갖출 수 있었던 소위 기마의 중장보병으로서 폴리스를 형성하고 이를 방위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전사들이었다.

 성립 초기의 폴리스가 대체로 왕정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귀족정과 다름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초기 폴리스의 왕은 오리엔트의 전제군주와는 판이하게 다른 존재였다. 왕은 전쟁에서 전사들을 지휘하고 종교의식을 주재하는 등 폴리스의 중요 사항을 관장했지만, 그러면서도 항상 전사들, 특히 전사귀족들의 모임에서 그들과 협의하고 그들의 동의를 얻어야만 했다. 이래서 전사귀족들의 발언권은 처음부터 강력할 수 밖에 없었고, 왕권은 이들 귀족들에 의해서 크게 제약받게 되어 정치의 실권은 사실상 이들 귀족층의 수중에 있었다. 그 후 기원전 7세기까지는 그나마 왕정의 형태마저도 거의 사라지게 되었고 왕가는 귀족층에 흡수되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