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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게르만족의 이동과 서로마 제국의 멸망

by kraneco 2024. 11. 3.

게르만족의 이동

 로마 제국이 몰락의 길을 치닫고 있던 4세기 후반에 훈족이 동유럽에 침입했다. 이를 계기로 게르만족의 이동이 시작되어 그 후 약 200여 년간 유럽은 민족이동의 물결에 휩쓸리게 되었다. 인도-유럽어계인들의 중요한 한 갈래인 게르만족은 로마 제국이 한창 그 평화를 자랑하고 있을 무렵 라인강과 도나우강 너머 유럽의 동북부 일대에 널리 흩어져 살고 있었으며, 원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남부와 발트해 연안의 북부독일 지방에 살고 있었던 이들은 그 후 남하하여 기원 원년 전후에는 라인강과 도나우강 주변까지 진출하여 로마 제국과 접촉하게 되었다.

 그들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촌락생활을 하며 수렵과 목축 그리고 농경에 종사했다. 부족마다 왕이 있었으며 사회계층으로는 귀족, 자유민 그리고 노예가 있었다. 왕이라고는 하지만 실상 수장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였고, 부족의 중요 사항은 전사들인 자유민의 모임에서 토의되고 결정되었다. 그들 사이에는 종사제라는 전사조직이 있었는데, 그것은 한무리의 전사들이 유력한 군사적 우두머리를 따르며 그에게 충성을 바치고, 우두머리는 그들을 보호하고 부양해 주는 제도였다. 그들은 천신 워단, 군신 티우, 뇌신 토르 등 여러 신을 믿었으며, 사납고 거친 면도 있었으나 대체로 소박하고 용감하여 게르마니아를 쓴 타키투스는 그들의 미덕을 오히려 찬양할 정도였다.

 기원후 3세기경 로마 제국의 내정이 문란해지고 국경방비가 소홀해지자 게르만인들 중에는 국경을 넘어 로마 영내로 흘러들어오는 자의 수가 늘어났다. 이렇게 스며든 자들은 로마의 하급관리나 로마군의 용병이 되기도 하고 콜로누스로서 농사를 짓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4세기 후엽에 카스피해 서북쪽에 있던 훈족이 서쪽으로 이동하여 흑해 북쪽에 자리 잡고 있던 동고트족을 치고 이어 서고트족에 압박을 가하자 이에 밀린 서고트족들이 로마 황제로부터 도나우강을 건너 로마 영내에 이주할 허락을 받아 대거 이동해 왔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이후 약 200여 년에 걸친 게르만족들의 대대적인 로마 영내 이주가 시작되었다.

7왕국과 민족이동의 물결

 그러나 평화적인 이주는 곧 무력에 의한 침입으로 바뀌었다. 378년 로마 지방관리와의 분쟁을 계기로 서고트족은 로마 황제에 반항하고 일어나 아드리아노플에서 로마군을 패배시켰다.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 로마는 한때 이들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았으나 396년 서고트족은 알라리크의 지휘하에 다시 봉기하여 그리스를 약탈하고 이어 이탈리아를 공격했다. 이 침입을 막은 로마군의 장군이 유명한 스틸리코였는데, 그 역시 실은 게르만족의 하나인 반달족 출신이었다. 게르만족의 침입에 대한 방비를 게르만족 출신의 장군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로마 제국이 처해 있던 상황을 여실히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5세기 초에 민족이동의 물결은 라인강변에도 밀어닥쳤다. 이탈리아에 침입한 서고트족을 막기 위해 406년 스틸리코가 라인 국경 수비군을 철수하자 반달족을 위시하여 이 지역 게르만족들이 대거 제국령에 침입해 온 것이다. 반달족은 갈리아를 거쳐 에스파탸에 들어가 그곳에 반달 왕국을 세웠다. 그러나 그 사이에 이탈리아에 침입하여 로마를 약탈한 서고트족이 이어 남부 갈리아를 거쳐 에스파냐에 쳐들어오자 반달족은 이에 밀려 아프리카로 건너가 다시 그곳에 반달 왕국을 세웠고, 서고트족은 에스파냐와 갈리아에 걸쳐 서고트 왕국을 세웠다. 로마군단의 철수는 브리튼섬에서도 불가피하여, 5세기 초 그들이 떠나자 북부독일과 덴마크 지방에 거주한 게르만족인 앵글족과 색슨족들이 브리튼섬의 동남부 지역에 쳐들어와 켈트계 브리튼 원주민들을 서북쪽으로 밀어내면서 이른바 7왕국을 세워 나갔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그러는 동안 서로마 제국에서는 여전히 군대를 장악한 장군들이 실권을 잡아 황제는 유명무실해졌다. 장군 중에는 아에티우스처럼 훈족의 왕 아틸라를 무찔러 한때 로마의 위세를 빛낸 자도 있었으나, 그가 암살된 이후 다시 혼란은 계속되어 실제 지배자는 게르만족 출신의 용병대장들이었고 황제는 그들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476년 게르만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는 그나마 꼭두각시 황제의 지명조차 그만두고 스스로 이탈리아 왕이라 칭하게 되어, 서로마 제국은 형식적으로도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

 그 후 5세기 말엽에 다른 두 게르만족이 또다시 로마 영내에 침입해 왔다. 그것은 갈리아에 침입한 프랑크족과 이탈리아에 쳐들어온 동고트족이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센강과 루아르강 사이의 갈리아 지방에는 로마의 장군 시아그리우스가 게르만인의 침략을 막고 있었으나 486년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는 이 땅을 점령하여 프랑크 왕국의 기반을 세웠다. 한편 로마 제국 황제로부터 로마의 보호자라는 칭호를 받은 동고트의 왕 테오도릭은 489년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에 침입해, 찬탈자 오도아케르를 죽인 뒤 동고트 왕국을 세웠다.

 이렇게 기원후 500년까지에는 서로마 제국 영토의 모든 지역에 게르만족들의 여러 왕국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러한 나라들은 대체로 오래 지탱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들의 본고장을 멀리 떠나 로마 영내에 새로 나라를 세운 소수집단으로서 뒤따르는 인적 증원 없이 수적으로 우세하고 문화적으로도 앞선 로마계 주민을 지배하기는 힘겨운 일이었다. 더욱이 그들은 이동을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대체로 로마 교회에서 이단으로 몰린 아리우스파 종교를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정통파인 카톨릭교를 받아들이고 있던 로마계 주민들과 융합하기 어려웠으며 따라서 그들의 지지를 얻기도 힘들었다.